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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보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에 대해 알아보기

by vagabonder94 202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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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 알아보기

 

클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1997년에 한국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 드리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란?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는 1997년에 우리나라가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하 되면서 IMF에 돈을 지원받기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금융시스템은 거의 붕괴했고 다수의 기업이 파산 및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가계경제가 파탄 나고 자살률이 급증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으며, 이는 빌린 돈을 다 갚은 2001년 8월 23일까지 이어졌습니다.

 

 

외환위기 발생원인

외환위기가 발생한 주요 원인으로는 크게 외환 부채 증가, 환율제도의 취약성,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 등을 뽑을 수 있으며, 각 원인에 따른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외환 부채 증가

우리나라는 당시 해외에서 대규모로 유입된 자본을 바탕으로 큰 경제 성장을 이룬 국가였습니다. 이러한 대규모의 자본은 금리 하락과 외화 확보 정책을 통해 끌어낼 수 있었지만, 금융 시장 과과 불안정한 외환 부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2. 환율 제도의 취약성

1990년대 말,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일제히 어려움을 겪자, 외국 투자 기관들은 한국의 경제도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고 판단해서 투자 자금을 대규모로 회수해 갔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1997 9월 이후에 계속되는 외환시장 불안 속에서 원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환율 방어를 시작하였고 이에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그러던 중, 만기가 끝나가는 국외 차입금의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해서 외환 지급불능 사태가 초래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3.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

1996년까지 24개의 투자금융회사는 종합금융회사로 전환되었으며, 이후 6곳이 더 늘어나 해외를 대상으로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회사들은 외국에서 단기채를 끌어와 어음교환을 시작했는데, 기업이 부도를 일으키게 되자 외채를 끌어서 어음 할인을 한 종합금융회사들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고 특히 한보와 기아의 12조 원가량의 대형 부도 사태는 위기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대동, 동남, 경기, 충청 은행 등 5곳은 국민, 주택, 신한, 한미, 하나 은행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흡수된 은행과 연관된 작은 기업도 연달아 도산 위기에 빠지게 됐습니다.

 

 

외환위기 극복

김대중 정부로 출범하면서 IMF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 자율화 정책을 수립, 대기업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신용카드 정책, 정리 해고제를 일괄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이후 2년이 지났을 때 우리나라는 경제 지표상으로 성장과 물가,경상수지 등에서 전반적으로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또한 전반적인 기업의 주가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보다 높아지고 금리는 낮아졌으며 환율도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로 인해 내수가 위축되면서 매우 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1999년 들어오면서 무역수지 흑자가 390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굉장히 빠른 회복세를 보여줬습니다. 2000년에는 유가 상승과 경기 상승으로 수입·수요 증가에 따라 흑자 규모가 축소되기는 했지만 117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고 공장 가동률도 수출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80%대로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업종에 따라 회복 속도에 차이는 일부 있었지만, 철강과 섬유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뚜렷한 경기 상승이 보였고 특히 반도체·조선·정보통신·자동차는 호황기에 접어든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고성장/저물가/경상수지 흑자'를 동시에 달성하는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1997년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할 때 나라에 있는 외채를 갚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금을 기부해 약 227톤의 금이 모아져 세계적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긍정적 평가를 끌어내는데 크 기여를 했습니다.


재정경제부에서 발표했던 자료를 보면 1997년 5.8%의 성장률은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1분기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8.7%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하지만 1999년에 접어들면서 플러스로 반전을 시도했고 2분기에는 7.6%, 3분기에는 13.8%대로 뛰어올라 경제 관련 기관들 사이에서 경기과열 논쟁마저 불러일으켰습니다. 한편 소비자물가는 1998년 7.5%에서 1999년엔 2% 이하로 급속히 떨어졌으며, 2000년에 접어들어야 3%대의 안정세를 지속했다. 이러한 거시경제지표 호조에 힘입어 구제 금융 신청 당시 바닥을 보이던 외환보유고는 2000년 2분기에 800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순채권국으로 탈바꿈했으며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추락했던 국가신용 등급도 투자적격 등급으로 상향 조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금융시장도 외형상 안정세를 되찾았습니다. 외환위기로 등락이 심했던 달러/원 환율은 1,100원대로 안정세에 접어들었으며, 30%대로 치솟았던 시장금리는 안정세를 보이면서 1998년 하반기쯤에는 4%대로 하락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2000년 12월 4일에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공식 발표했습니다. 

 

 

결론 및 교훈

외환위기는 우리 국민들에게 씻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정말 많은 기업은 파산했고 그 여파로 대량 실업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국가 회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했고, 정부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하였고 지금은 다른 나라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첫째로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를 피하고 재무 상태는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은행 시스템은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하고 임없는 규제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경제 상황을 항상 주시하고 미리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에 대한 글을 마치겠습니다.

항상 독자님의 시간이 절약될 수 있는, 양질의 정보가 담겨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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